대문 겸 인사글 by 곤냥




※ 곤냥의 얼음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요.







이 얼음집은


'초전자포' & '리퀘스트' & '자캐'


& '기타 애니' 백합 소설들이 주로
 

서식하는 곳입니다.




가끔 시시하고 일상적인 잡담이나


어느 분이 주신 그림들이 올라 올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이곳을 보람있게 방문하다

가시길 원합니다.




꾸벅ㅡWㅡ

[니코마키]몇 만 번이라도 by 곤냥

 [ 미안해. ]


그 한 마디에 연을 끊었다. 그녀의 입이 호선을 그리며 승낙의 말이 나올 것이라고 처음부터 기대를 하고 있진 않았지만, 은연중의 IF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얼마나의 충격이었는진 이제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때의 내가 얼마나 어렸었는진 알았다. 사실, 연을 끊고 멀어지면 마음의 뜨거운 부분에서도 나갈거라고 그런 멍청한 생각이었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이미 뼈저리게 겪었음에도. 한 번 좋아하게 되버리면, 아무리 외면한다고 해도 결국 끝까지 좋아하게 되어버렸으면서도. 이미 8년이나 지난 일이건만 아직도 좋아하고 있다. 알고는 있었어. 이 마음이, 이 감정이 결코 쉽게 멈추지 않을 거란 것쯤은.


 " 끝나지가 않아. "


그걸 알면서도 고백한 주제에.





[러브라이브]몇 만 번이라도





니시키노 마키는 멍하니 손에 쥔 펜을 휘휘 돌리면서 가만히 차트를 보고있었다. 차트에는 매끄러운 글씨체로 pneumonia(폐렴)이라고 써져있다. 그 밑으로 가벼운 감기 방치로 인한 급성폐렴이란 간단한 문구까지. 어쩔까. 펜을 고르게 쥐어 폐렴 부분을 툭툭 가볍게 친 마키는 이 차트에 적힌 폐렴 환자의 이름 부분도 툭툭 쳤다. 아득하다.

야자와 니코.

성은 기억하고 있지 않았었다. 아 이런 성이였지, 하고 깨달은 것도 이 이름을 보고나서였다. 외모 같은 것도 솔직히 말하면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검은 머리를 주로 양갈래로 묶고 있다거나 그 눈이 맑은 선홍색이라는 것 정도.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미련하게 추억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멋대로 자신에게 맞는 외모를 만들어내고 성격도 바꾼 채 그것이 온전히 그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내는 엉뚱한 특기가 있다는 말이었다.


 " 미치겠네. 어쩌면 좋을까ㅡ. "


그런데도 사람이란 간사해서 환상속의 외모와 성격이 현실과 성격이 다르다고 해도, 금방금방 바꿔버린다. 

그리고 마키는 스스로가 정말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몇날 며칠을 이렇게 밤을 지새우며 차트를 보고 또 보았나. 울음이 나는건지 따가워지는 눈을 꼭 감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속이 울렁거린다.

보지 않으면 또 미칠 것 같아.


 " 니시키노 선생님. "
 " 아, 응? "
 " 어딜 그리 급하게 가세요? "
 " ...어, 제 환자에게 가는 길입니다. "


정말 좋은 주치의네요ㅡ. 같은 말을 내뱉으며 넉살좋게 웃는 이름 모를 젊은 간호사의 말에 마키는 그저 살짝 미소 짓기만 했다. 아니. 이게 미소인지 또 다른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은 다급하기만 하다. 흰 가운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 땀이 차고 있었다.

지나치는 여러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뛰듯 걷는다. 야자와 니코. 계속 머릿속이 웅웅거리며 그 이름을 속삭였다. 그만 하라는 단호한 마음도 갖추지 못한 주제에 마음껏 받아들일 수도 없다.

710호.

니시키노 마키가 주치의라는 이 번호에 야자와 니코란 이름의 여자를 억지로 찔러 넣은 주제에.


 " 게다가 이 환자를 끝으로 휴가를 핑계로 더 이상 환자도 받지 않으면서 말이야. "


주머니에 찔러 놓은 손으로 문을 열었다. 분명 밤인데도 이상한 눈부심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멋대로 찾아올 수 있을만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종이 쪼가리같은 인내심 때문이다.

1인실 형태의 병실은 온전히 한 사람만으로도 따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늦은 밤인데도 아직 침대를 세워 기대고 있는 모습. 서서히 이쪽을 돌리는 고개에 괜히 침을 삼켰다.


 " 오늘은 더 늦었잖아, 이 니코니를 기다리게 하다니. "
 " 시끄럽네. 바쁘니까 어쩔 수 없잖아. "


침대 곁으로 다가가는 다리조차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다. 이미 거의 낳은 모습의 야자와 니코는 첫날의 초췌하고 병색이 짙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하다는 걸 알고는 있나. 가만히 침대 맡에 서서 괜히 차트을 훑었다. 이미 몇 십번이나 봐서 외워버린지 오래였건만. 밝은 얼굴로 이것저것 말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그녀의 외모를 찬찬히 살폈다.


 " 그래서 주치의라는 사람이 이렇게 환자를 기다리게 해? 입장이 바뀌었잖아. 어디까지나 마키짱은 니코니ㅡ를 기다려야 한다고! "
 " 뭐라는 거야, 딱히 자고 있어도 상관없다고? "


예쁘다.


 " 호오, 그래서 곤히 잠든 아름다운 모습의 니코니를 덮칠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
 " ......자, 잠든 사람을 덮치는 취미는 없어. "
 " ......앞의 침묵은 뭐야?! "


너무 예뻐. 곤란할 정도로.


스쿨 아이돌로 인정받고 그것으로 정식 아이돌로 데뷔했다는 말은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래서 애써 지금까지 눈과 귀를 막았는데, 이런 식으로 마주칠 줄이야. 


 [ 오랜만이네, 마키짱. ]


어땠더라.


 [ 많이 예뻐졌어. 니코니ㅡ만큼은 아니지만. ]


얄밉게 혀를 빼어물던 어린아이같은 야자와 니코를 바라보기만 했던 나의 얼굴은. 


 [ 있지, 그 날의 말. 아직 유효해? ]


정말로, 어땠더라.


나락의 끝을 보는 것만 같은 아득한 기분에 사로잡혀 마키는 가만히 주머니에서 청진기를 꺼내들었다. 8년 전보다 길어진 그 검은 머리카락이 허리께에서 살랑거린다거나 아직 소녀같은 고운 피부라던가 자신을 비추는 그 선홍색 눈이라던가. 등을 보이며 상의를 들어올리는 야자와 니코에게 청진기를 가만히 대었다. 차가운 기운 때문인지 움찔, 하며 몸을 떠는 그 여린 어깨가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스럽다.


" 읏..., 적어도 니코니ㅡ를 진찰하려면 청진기 정도는 따뜻하게 해오는 게 예의잖아. "


투덜거리는 그 입에 청진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차가워서, 그래서 뛰는 거라 믿어야 할까. 귀에 닿아오던 그 뜨겁던 심장 소리를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이 내 것인지도 모르는데. 자꾸만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려는 야자와 니코의 얼굴을 손으로 고정시킨다. 항의하는 말이 들렸지만 그것마저 상관없는 마음으로 마키는 그녀의 등선에 입술을 맞추었다.

차갑다면, 이런 것은 어때.

야자와 니코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허리 부근에서, 폐가 있는 곳에 맞추고, 심장에 위치한 부근에 입술을 부볐다. 흐읏ㅡ. 피아노처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성숙해진 여자를 보면서, 마키는 문득 어디론가 멀리 도망치고 싶어졌다.


" 내일이면 퇴원해도 괜찮겠네. "


그럼에도 가고 싶지가 않다.


" 너, 너ㅡ "


곤란할 정도로.

숙였던 몸을 폈을 때, 야자와 니코의 얼굴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목에서 얼굴에서 귀까지 붉어져 버린 그 모습은 종이 쪼가리 같은 인내심을 태워버리고 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머릿속에 새기듯 담다가 그려지듯 웃었다. 방금 것은 아마 2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 좋아할 수밖에 없다면, 기억을 새기면 된다. 추억만으로도 사람은 버틸 수 있기에.


" 그럼 난 갈게. "


들어올 때도 그랬지만, 나갈 때도 어김없이 다리는 후들거렸다. 문 앞에 서서 여전히 땀에 찬 손을 들어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뒤에서 저를 안은 온기 때문에.

발목에 족쇄가 채워지는 느낌 때문에.


" 있지, 마키짱. "


네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걷지도 못하는 겁쟁이 주제에.


" 그날의 말. 아직 유효해? "


몇 번이나 그 말을 하는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알면서도.

사실 무슨 말을 했던 건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영원히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있더라도 그 말이 내게 큰 영향을 주진 않았었나 보다. 그런데도 몇 번이고 나를 일으켜 세워 걷게 만드려는 의도는 알았다. 그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방향이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그런데도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평생 기억에 남을 너의 그 한 마디 때문이였어.


" ...사랑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아. 페닐에탈아민은 격렬한 사랑의 감정에 반응해서 나타나는 호르몬인데, 이게 분비될 경우 신경에 대한 마약이라는 엔돌핀이 나와. 바로 이 엔돌핀이 사랑의 절정을 느끼게 해주는 옥시토신을 만들어내는데, 이게 지속적으로 분비되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해. 길어봐야 3년. 조금 더 쳐봤자 4년 정도. "


허리를 더욱 꽉 껴안는 그 온기에 어쩌면 난 이미 기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의미없는 말을 계속 나열하면서 깨달았다.


8년 전 그날,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 근데, 유효한 것 같아. "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고 멍청한 말을 한 건지,


" 몇 만 번이라도 사랑할 수 있어, 니코짱. "
[ 몇 만 번이라도 사랑할 수 있어, 니코짱! ]


얼마나 굉장한 말을 해버린 건지도.


손을 움직여 떨어지지 않을 듯 꼭 두른 팔에 대면 야자와 니코는 팔을 풀어 손을 맞잡아 주었다. 온기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 사랑해야만 하는 여자였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발목에 족쇄가 채워지고 손마저 구속되었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벗어날 기회따윈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 니코니ㅡ도, 그럴 수 있게 되었어. "


사실, 벗어나려 하지 않았던 건 나였으면서도.


[쇼쿠미코]지겨워진다고 해도 by 곤냥

책상에 마음껏 엎어졌음에도 꼬물꼬물 움직이는 나른한 몸짓은 사람의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따스한 갈빛의 머리카락. 그 사이로 빛에 반사되어 환상을 보는 것처럼 노을빛을 띠었을 때, 눈가가 살짝 접히며 서늘하게 웃음기를 만들어내는 그 매혹적이고 퇴폐적이기까지 한 매력에 그저 말 몇 마디 나눈 클래스메이트의 심장에 파문을 일으킨다.

고양이처럼 날개뼈를 뾰족하게 세우며 느릿하게 일어난 소녀는, 아직도 얼굴 가득 졸린끼를 버리지 못한 채 답답하게 목을 조이는 블라우스의 윗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원숭이 엉덩이보다도 더 빨간 얼굴의 클래스메이트의 머리를 손으로 다정히 툭툭 건드렸다.



 " 깨워줘서 땡큐. "


그러고서 교실을 나서는 소녀의 뒤로, 클래스메이트는 손으로 입을 막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 스스로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엄청났다.

미사카 미코토라는 이름의 날라리의 매력을 감당하기엔.




[초전자포]지겨워진다고 해도




토키와다이 중학교에 재학중인 학원도시 Level 5 중 3위에 위치한 '미사카 미코토'란 이름을 가진 소녀는, 유명한 반항아였다. 딱히 일을 크게 벌린 건 아니지만 교복을 자기 편한대로 입거나, 가끔 수업시간에도 들어오지 않는 등등의 일을 벌였으니 아가씨 학교에서 그만한 불량아도 찾아보기 힘든 이유였으니. 그러나 학교에선 소녀에게 큰 제지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

오늘도 큰 제지를 받지 않았던 미코토는 멍하니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맑다. 나른한 얼굴에 묘하게 들뜬 것 같은 분위기는 지나가는 학생들로 하여금 한 번씩 더 돌어보게 만든다.



 " 안녕하세요, 미사카 씨. "


그리고 조금 안면을 튼 이들은 인사 겸 사탕이나 초콜릿같은 것들을 주고 갔다. 비록 그 당사자에게선 아무 말도 없는 뚱한 표정이었지만.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를 보낸 미코토는 두 손 한가득 쌓인 달콤한 향내에 삐뚜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미간이 오므려진다. 달콤한 것들은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각종의 달달함으로 무장된 과자 사이에서 레몬맛 막대사탕의 포장을 벗겨 입에 넣은 미코토는 문득 정면을 바라보았다.



 " 늦어. "


뭘 잘했다고 저리 당당한지. 

맑은 하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유유자적 걸어오는 여자. 그녀와 같이 걸으며 양산을 씌어주는 받을어 모시는 그 모양세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그늘을 벗어나긴 싫은데. 뚱하게 표정을 굳히며 입을 우물거린 미코토는 그늘 안으로 들어온 그 빛을 뿜어내는 여자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 꺄악?! "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미코토의 무릎 위에 앉은 여자. 살랑이며 불어온 바람에 여자의 자연스럽게 뻗친 금발이 얼굴을 간질였다. 그 머리카락에서 달달한 향이 풍긴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한 손 가득 단 것을 그러쥔 단 것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그 옆에 또 손에 쥐지 못한 단것이 가득하다.



 " 이만큼이나 날 기다리게 했어. "
 " 후후, 미안해요. 파벌이 날 놔주지 않아서. "


그 단 것을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으며 다시 여자가 말한다. 많이 삐졌어요? 그 어린애를 다루는 듯 상냥한 물음에 날카로워져 있던 소녀의 눈가가 누그러졌다. 안 삐졌어. 여자의 등에 이마를 부비며 고개를 든 미코토는 시야를 가득 매우는 그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에 별을 박은 것 같았다.



 " 그런데 오늘 수업은 어땠나요? "
 " 재미없어. "
 " 그래도 유급은 안 되는 거 알죠? "
 " ......잉. "


유급이고 뭐고 최고의 정신계 능력자인 여자의 도움을 받아 확 넘겨버리고 싶지만, 미코토는 과거 먼저 선을 그은 여자의 한 마디로 인해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사실은 그것이 토키와다이 이사장의 말이라는 것도, 하지만 이 여자가 그 말을 따른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주의인 이 여자에게 분명 이득이 있어서겠지.



 [ 능력없이 순수하게 제대로 졸업해요, 미코토. ]



예를 들면,



 " 뭐,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참아볼게. "


능력이 통하지 않는 전격계 최고의 능력자가 주는 무한할 신뢰라던가.

여자의 등허리에 다시 이마를 부볐다. 이런 행동으로 자주 여자에게 간지럽다며 핀잔을 듣곤 하지만 미코토는 역시 이런 자세가 좋다. 앞을 껴안고 있으면 여자의 두껍고 무거운 두 지방 덩어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강한 박동소리가 내게 전해져 왔으니까. 



좋아해. 



이 강한 박동도, 간지럽다는 듯 움츠리는 몸도, 그저 그랬던 달달한 체향도, 사랑스럽게 머리를 토닥이는 손도, 날씨에 상관없이 빛나는 그 자체의 너도.

모두 좋아 죽겠어.



 " 있지. "
 " 응? "
 " 언젠간 말이야. 이런 관계도 지루해질까? "


이렇게나 좋아하는데도.

여자는 침묵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제 머리를 꼭 껴안았다. 기묘한 부드러움과 물컹거림에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움츠린 소녀는 떠듬떠듬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둘러싼 팔을 움켜쥐었다. 그 조심스럽기까지 한 온도에 여자는 소녀의 황홀한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는 알고 있다. 미사카 미코토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다름 아닌 지겨움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여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손에 쥐었음에도 마음껏 애정하지 못한다.



" 그러지 않는다는 장담은 못해요. "



그러나 얼마나 아득하게 사랑해야 이 관계가 지루해질 수 있을까. 읽지 않아도 보이는 지독하고 집착적인 애정과 신뢰. 이 사랑이 짧게 타오르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권태기가 찾아오지 않는다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만약에 식는다면, 이 뜨거움이 식어버린다면, 다시 한 번 타오르면 된다. 몇 번이고, 몇 십번이고, 설사 몇 천 번이 되더라도 다시 활활 타오르면 된다.



" 하지만 미코토는ㅡ "


당신이 세상에 지쳐 떨어지는 걸 내가 붙잡았 듯, 인간에게 지쳐 믿음이 사라지는 걸 당신이 붙잡았 듯, 딱 그렇게만.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어설픈 변명으로 그렇게만 서로를 무한히 다시 사랑하자고.



" 내 능력으로 어떻게든 날 좋아하게 될 테니까, 상관없어요☆ "



작게 웃는 소리. 고개를 든 미코토의 눈가가 서늘하게 휘어지며 눈웃음을 만든다. 어느새 차갑기도 한 눈을 만들게 된 당신이 그 안에 뜨거운 열망을 담을때면 나는 다시 당신을 사랑하게 된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도록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아.



" 너야말로 울며 불며 매달려도 벗어나지 못하니까, 지금 맘껏 후회하도록 해. "


당신의 애정에 숨막히고, 당신의 집착에 눈물이 난다. 나락에서 헤매던 미사카 미코토가 나의 것이라는 이 눈. 이 노을빛이 가득한 눈이 당신과 영원을 함께 한다는 막연하지만 확실한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돼. 미사카 미코토.

언젠가 이것마저 지치게 된다면, 당신과 '가족'이라는 이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아득한 기분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몇 만 번이라도 당신을 사랑하겠어.


[키야코토]어른에게. by 곤냥

그녀는 어른이었다.




[초전자포]어른에게.




시스터즈 사건을 경험하고 이제껏 노력하며 길러 온 힘이 무력화되었을 때, 그리고 간신히 구원 받았을 때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었다. 연구원이 되고 싶어. 그런 마음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지식은 충분히 쌓았다고 생각해 버릴 만큼, 주변이 말릴 정도로 아등바등 책을 읽으며 지냈었다. 그러나 어디로 진학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어리버리한 내게 손을 내민 건, 언제나 학생을 생각하는 선생님이자 자신의 정의를 확립하고 있던 연구원이었다.


" 이대로가 더 좋지 않아요? "
" 안 돼. 이대로 두면 최상의 상태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 후유증이 심할 거야. "


진학을 포기하고 이 사람의 옆집에 짐을 옮긴 미코토는 현재진행형으로 기초부터 확실히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기초 실험은 전기가 얼마나 사람의 뇌의 영향을 미치는가ㅡ하는 광범위하기까지 한 기초 중의 기초인 실험이었지만, 다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미코토는 거절하기보단 기꺼이 수용했다.


" 좋아. 이제 됐어. "


평소에는 어딘가 맹하고 서투르기만 한 사람이 연구와 실험에 들어가면, 보고 있는 저가 질릴 정도로 굉장한 얼굴로 진지하게 임한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 좋은 사람이다. 최고의 선생님이다. 최상의 연구원이었고, 그리고 훌륭한 어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리고,

멍하니 인조 뇌를 치우던 여자의 날카로운 턱선을 보던 미코토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게 되어버린 여자.


" 키야마 선생님. "
" 응...? "


느릿하고 여유로운 짧은 대답. 이 무뚝뚝한 대답마저도 왜 좋아하게 되어 버렸을까.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을 벗어 의자에 걸쳐 놓으며 돌아보는 것까지, 그것마저도 좋아하게 되어 버렸어.


" 오늘 선생님하고 같이 자도 되요? "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연스러운 어조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 그래. "


잠깐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마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했을까.

전해지지 않는 것마저 이 사람이 어른이라는 증거겠지.








난 어린애였다. 말리지 않은 머리를 털털 닦으며 침대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푹신한 이불의 감촉. 그 사이로 어른인 사람의 뜨거운 기온에 마음마저 뜨거워지는 걸 알았다. 항상 이래. 이 뜨거운 마음을 몇 번이나 참고 뜬 눈으로 밤을 새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 키야마 선생님. 벌써 자요? "


오르락 내리락하는 고른 숨. 멍하니 그 고요함을 지켜보며 미코토는 살짝 웃으며 조금 흐트러진 이불을 다듬었다. 여기까지 올때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실험을 공유하고, 시간을 공유하고, 이 같은 침대까지 공유할 때까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 선생님의 손을 잡으며 조금 웃어버린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전해지지도 않았는데,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끝을 생각하고 있었다.


" 선생님. "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전했던 마음이 닿지 않았던 이유는 이 사람이 어른이기 때문이었다. 수줍어 하기만 했던 나란 어린애가 먼저 전할 때까지 얼마나의 노력이 있었는진 이젠 생각나지 않았다. 이것마저 무뎌졌기에.


" 좋아해요. "


이런 말조차, 어른인 이 사람 때문에 무뎌진다.


" 좋아하고 있어요. "


다시 한번 당신이란 어른에게, 내 마음을.

제발 닿아라. 잡고 있는 손에 깍지를 껴 손 가락에 내려앉듯 입술을 맞닿으며 미코토는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닿아라. 닿아라. 부디, 닿아줘. 솔직하게 이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사람이 어른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지금만이라도 좋으니.

키야마 하루미에게, 미사카 미코토가.


" ㅡ사랑하고 있어요. "







손에 닿은 뜨거운 온기. 참았던 숨을 헐떡이며 가슴을 쥐어 잡듯 꿈틀거린 하루미는, 피곤에 지쳐 잠이 든 제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사랑하고 있어. "


아이의 답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어른이기 때문이었다.


[사카코토]나를 위한 사죄. by 곤냥

사랑이란 단어가 서툰 나를 용서해줘.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해줘.

사랑이 아니어야만 하는, 이 세상을 용서해줘.




[초전자포]나를 위한 사죄.




오롯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너희들이 내 DNA로 만들어진 클론이 아니라면, 태어난 방법이 다르나 나와 같은 피를 가진 동생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해 보기도 한다. 물론 책임 회피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지만, 결국 생각해 버리고 마는 자신이 있다.


" 괜찮습니다, 저희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라고 미사카는 언니를 위로해 봅니다. "


이 따스한 온기 하나에, 이 따스한 말에, 이 따스한 마음이 비수가 되어 제 심장을 찢어 놓았다. 둔하다고, 자각이 없다고 누군가가 저에게 자주 말하곤 하지만 그리 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정말로 둔해서 자신이 둔하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게 아니라면,


" 그저 이렇게만 있어주세요. 라고 미사카는 간절히 애원합니다. "


이렇게나 넘쳐 끓을 것 같은 숨 막히는 애정을, 그렇게 만들었던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그녀들에 대한 애정을, 지금에서야 깨달을 리가.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세상에 태어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에 속이 쓰렸다. 목구멍이 콱 막혀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제것이 아닌 것 마냥 뜻대로 되지 않고 날뛰어 고통스러운 가슴에, 미코토는, 그녀들의 언니인 미사카 미코토는 결국 그 거대한 존재들의 앞에서 무릎 꿇어야 했다.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 ......용서, 해줘. "


용서해 달라 말했던가.


" 부디.... "


괜찮다고 말했던가.


그것들을 전부 포용할 만큼 자신을 큰 그릇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한다. 담기도 벅차서, 그렇다고 쏟아낼 순 없어서 감당하다 몇 번이나 깨진 그릇을 애써 이어붙였다. 조금만 더 크게, 조금만 더 크게. 깨져서 흘러내린 물을 다시 주워담아 또 몇 번이나 깨져간다.

얼마나 더 깨지고 깨지고 깨져야, 얼마나 더 이어붙이고 어이붙이고 이어붙여야, 얼마나 더 내가 살아야만 너희들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말할 수, 없어. "
" 알고, 있어요. 미사카들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 제발 일어나 주세요. 라고 미사카는 언니의 손을 잡습니다. "


떠듬떠듬 흔들리는 목소리가 괜찮다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워지는 온기를 내가 납득한다면 자신의 그릇을 이어붙인 의미가 없어.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을 것만 같은 목에 침을 꿀꺽 삼키며 미코토는 천천히 그 손을 끌어당겨 깃털이 내려앉듯 그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

자신과도 같다.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그 손가락에 괜히 마음이 설레이는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만 더 크게ㅡ하고 버티며 받아들였다.

사랑. 그 한 단어로 받아들였는데.


" 용서해 줘ㅡ. "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아서, 너무 높아서, 너무 무기력해져서 용서를 빌었다. 동성애, 근친, 비난, 자학. 맘껏 사랑하기엔 언젠가 부서질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들이 아니다. 부서지는 건 자신이었다. 얼마만큼이나 작은 그릇인지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깨닫게 된다. 언니면서, 이 아이들의 언니라면서 이 정도까지밖에 되지 않는 나를 용서해줘.


" 언젠가, 정말로 언젠가 너희들에게 평생 사랑의 말을 약조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나를 실컷 패도 좋아. "


그러니 사죄한다.


" 나만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이기적인 구원요청이지만, 이런 바보같고 멍청한데다 약해빠진 언니지만, 그래도 좋다면, 제발ㅡ "


온전히 나라는 인간을 위해서.


" 지금의 나를 받아줘. "


언젠가, 오롯이 너희들만을 담을 그릇을 만들기 전까지만, 그때까지만 나를 숨쉬게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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